인스타. 남사친

아차 싶었다
속시끄럽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마치 벨이 울리지 않는다고 스마트폰의 전화기능을 없앨 수 없듯이.

인정하든 안하든 중요하지 않다
박탈감, 열패감 뭐 고상한 이름 붙일것도 없다
그냥 부러운거다

풀빌라에서의 망중한이 부러운거고
비즈니스클래스 타고 다니는 출장과 디너코스가 부러운거다
공항 티켓팅의 지겨운 줄서기와 뜬금없는 마스크 푸념까지도.
누구인지까지 확인하고나면 부러움은 살짝쿵 분노를 수반한다
어째거나 열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나의 낮아진 자존감 때문인가
그럼 혹시 내 안의 뭔가가 고장난건가 
아니면 그냥 다들 말은 안하지만 이러고들 사는건가
(에라) 모르겠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초연해지자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정사각형 사진 몇장에 나의 평상심은 흔들려 버렸다

비교해보면 그리 꿀릴것도 없는 삶일것이다
어쩌면 내가 나을지도 모른다
이것조차 자위하는 것일까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그들의 추억속에 남고 싶다
무엇보다 좋은 '나'이고 싶었다
어디까지 온건지. 어디로 가는지.
아니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솔직히 혼란스럽다
이럴때는 뭘 어떻게 해야할까.

오며가며 마주하는 캠퍼스의 젊음이
지나간 나의 기회와 가능성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놓쳐버린 기차와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지 않기를
지금 가진것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평소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을
잉여 감정에 사로잡혀 이렇게 배설하고 있다

차라리 욕망과 부러움이 동력이 되어
나를 움직에게 하기를. 지치지 않고 달리게 하기를.
정말 잘 모르겠다.
그냥 다 뿌옇고 퍽퍽하다.

ps. 배설하고 뒤돌아보지 않았기에 문장은 부끄럽도록 느슨하다



약자는 선할거라는 착각. 남사친


작은 균열. 언제나 시작은 조금 신경을 거슬리게할 뿐이다.
하지만 작게만 보였던 그 균열은 점점 커져가고 더 많은 것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결국 균열이 아니라 파괴되어가는 전체를 발견하게된다

가장 하찮다고 생각했던 것,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이 나중엔 전체를 흔든다
장기판의 졸이 소리없이 야금야금
적진을 파고들어 왕을 위협하는 꼴이다

약자는 선할 거라는 지극히 편향된 생각
약자가 자신의 약함을 이용하려드는 순간
어정쩡한 체급의 강자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지독한 강자가 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강자가 아니라, 악인이라 부름이 옳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처세에 가깝다
주어진 환경에서 가용할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이익을 취하는 것.
약자의 약함은 상대의 가드를 내리게 하는 것은 물론
그를 편들어주고 도와줌으로써(동조함으로써)
상대가 스스로 선한 일을 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버린다

그리고 여기엔 디테일이 있다
약자가 약함을 활용할 때에 그 상대를 고르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절대 최강자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보다 아래.
자신에게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위치의 강자를 타겟으로 삼는다
최강자에게는 스스로 선인이 되는 행복감을 상납해야하니까.
그렇게 약자는 자신을 둘러싼 강자를 요리한다
자신의 약함을 즐긴다고 하면 좀 비약일까.

자, 그럼 어찌해야 할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완벽하게 짓밟아 찍소리 못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
물론 스스로 최강자가 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 중간을 겪어야 하니
어쨌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자는 그 자체로 역풍의 위험이 있고
후자가 적당한 방법일 것이다

약자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자.
약자가 자신의 약함을 이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의 거리.
철저한 기브앤테이크로서 선이 그어져있는 거리
여기서 나를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오지랖은 금물이다
모든 문제는 그런 오판에서 시작된다는 걸 잊지말아야한다
명심하시라. 약자가 선인일거라는 착각은
스스로 선인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약약강강 약강강약 이 따위 말에 혹해서
분기탱천하거나 경거망동해서 스스로 먹잇감이 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약자가 선할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데
그들은 자신의 약함을 이용하지 않는다

강자는 부도덕할거라는 선입견 만큼이나
약자는 선할 것이라는 착각이
나는 정말 역겹다.


탑건을 보면서 (부재: 아이스맨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입) 남사친


거리 곳곳에 쭈글쭈글 풀칠한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던 시절
항공모함의 위용과 전투기를 새총 쏘듯 사출하는 모습 
리얼로 찍은 공중전 씬의 절정을 장식하는
F-14 톰캣과 미그기의 캐노피가 상하로 맞붙은 기막힌 장면과
가와사키 바이크를 타고 활주로를 질주하던 장면
솔로 기타 리프가 그렇게 멋질수없었던 메인테마 연주곡
뭔가 벅찬 것이 시작하는 느낌이 정확히 전해지던 케니로긴슨의 데이져존. 
바에서 멋지게 고개를 젓혀서 마실 때 보이던 빨간색 버드와이저 병.
아직도 편의점 4캔에 만원(이제 만천원이지만) 버드와이저 라벨을 볼때마다 그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웃통을 벗어던지고 청바지 살짝 걷어올리고 멋지게 스매싱을 날리던 비치발리볼.
물론 레이벤 보잉 선글라스의 정석을 보는듯한 톰크루즈의 모습까지
감독. 배우. 음악. 연출. 제작비...상업영화의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수작 중에 수작이다
그리고 2022년. 올해 개봉한 속편. 매버릭. 전편에 필적한 수작이었다
토니스콧이 아니면 안될것같았던 연출도, 나머지 모든 요소들도 역시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영화속 그들도 늙었지만, 나의 시간도 흘렀다.
이제 나에게 와닿는 캐릭터는 탐크루즈 매버릭이 아니었다. 아이스맨 발킬머였다
영화를 보며 실력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일등 매버릭에 감탄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리 만족에 진한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상업 영화가 관객에게 해야할 일은 충분히 잘해주었다
최고의 파일럿이 모이는 곳에서. 이미 실력으로 모든 것이 검증된 그들이
또 다시 경쟁해서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그 곳에서
실력은 충분히 비등하지만 뭔가 성격도 생김새도 정이 덜가는 아이스맨. 발킬머. 결과도 그러했다.
그래도 속편에서 높은 계급으로라도 보상해주었으나. 역시나 그토록 바라던 일인자의 자리는 아니다.
그런 발킬머. 아이스맨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직이라도 옜다 하며 줄 수 있는 영화같은 세상이면 얼마나 좋으랴
어느 정도 높은 곳까지는 노력과 실력으로 올라갈 수 있다
마치 탑건에 모여든 파일럿들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또 한번 걸러진다. 
조금 사실적으로 말하면 도태된다. 떨궈진다. 버려진다. 

그래도 그만한 실력이면 어딜가든 인정이야 받겠지만
최종 선택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한 사람이된 심정.
그 열패감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탑건에 뽑히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

영화속 아이스맨이 오늘 내일하는 그 상황에서도 슬쩍 묻는다
최고의 파일럿은 누구냐고.
죽어가는 전우에게 말이라도 한번 못해주냐는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죽을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열패감.
죽도록 갖고 싶었던 그 무엇이다.

영화속에서도 그런 훈훈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니가 최고였어라는 죽어가는 옛 전우에게 적선하듯 한마디 해줄만도 하건만 결코 그러지 않는다
웃는 얼굴로. 정확히. 거부해버린다. 분위기 좋은데 왜이러나 친구.
이런 면에서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분명하다.

어떤 감정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훈장처럼. 십자가처럼. 주홍글씨가되기도 하고. 때론 유령처럼 보인다
열심히 살았던 사람일수록, 실력이 좋았던 사람일수록,
남들보다 치열하게 노력하고 추구했던 사람일수록,
어떤 감정은 가혹하게 깊은 상채기를 남긴다
열심히 할수록 위험하다니. 세상이 이렇게 무섭다.

그래도 너정도 실력이면 어디가서든 잘할거야
그렇게 열심히 하면 뭘 못하겠냐
물론이다. 그럴것이다.
분명 잘 먹고 잘 살것이다
영화 속 발킬머처럼.

하지만,
어떤 감정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영화 속 발킬머처럼.


후회왕. 남사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시작도. 주위의 칭찬도. 하늘 높은줄 몰랐던 자신감도.
그 무엇도 어떤 의구심도 가질 수 없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었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
그러고 싶었던 아집이 아니라
그러는 것이 옳고 당연하고 유능한 것이라
그 또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럴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그래선 아니되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믿고 보고 생각하되 행동만은 달랐어야 했다.

누구나 약점이 있느니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느니 하는
뻔한 자기합리화나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사람은 안변한다느니 타고난 기질은 어쩔수 없다느니하는
반쯤 인생 통달한 사람의 넋두리라면 차라리 솔직함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를일이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서푼짜리 재능이다.
어쩌면 내 삶을 든든하게 이끌고 두고두고 힘이 되어주었을지 모를 재능
어쩌면 있다고 믿었던 존재인, 재능 말이다.

애써 외면하면서 앞을 바라본다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또 한걸음 걸어간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그런 말은 그만 넣어두자. 가슴이 아니라 정말 땅에 묻어둬야한다.
난 나의 가능성과 재능을 과대평가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 귀중한 것은 따로 독립적으로 효용을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일부로서 오히려 나를 통해 그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다
인간의 재능이라는 것의 특질을 오판해선 안되는 것이다. 

그 어떤 기준도 초월한 수준이란 것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나와는 상관없는 천상계의 신화일 뿐이다

한가지 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간은 유한하고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나는 각성할 수 있어도 수많은 사람의 기억까지 그럴수는 없다는 것.
그래도 어쩌랴. 그동안 나는
너무나 성실히 최선을 다해서 후회를 향햐 걸어온 것을.
뛰지 못하는 것을 자책까지 하며 너무나 열씸히.

결론적으로 후회왕은 왕후회를 하고 있다.
이것 또한 너무나 성실히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밖엔 느닷없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맨날 옥외 주차장에 꾸역꾸역 세우다가
오늘따라 지하에 모셔 놓은 꼬질꼬질한 내 차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아무 답도 없는 이 일에도
이러나 저러나 후회를 하는 중이다

그냥 이러고 산다는 얘기다.

2022년 6월 13일.
남사친.


가파도 청보리밭 남사친

벌써 10년이다
오늘 하늘이 하도 맑고 파래서 광합성을 좀 하다가
문득 제주 가파도가 떠올랐다
반나절이면 둘러보고도 남을 작은 섬답게
소담스러운 담장과 좁다란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주하는
눈까지 시원해지는 청보리 밭
세상에. 벌써 10년이다

2012년 5월
사진반 OB 선후배 4명이 어슬렁 어슬렁 제주 여행을 떠났었다
명색이 사진반이니 카메라 하나씩은 어깨에 걸치고
언제 술한잔을 마실지 모르니 렌트카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고
그냥 바닷가 따라 걷다가 해녀가 해삼이나 자리돔 손질하고 있으면
한사라 사서 그 자리에서 한라산(반드시 하얀거)이랑 한잔 마셨고,
그냥 기분 내키면 셔터도 몇번 누르기도 하고...
그리고 또 걸었다, 이런 패턴의 반복
따로 숙소도 예약한게 없으니 적당한 해질녘에
근처 만만한 펜션 같은 곳을 잡았고
이번엔 불이 피우고 고기에 한잔 더 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주 어디가나 근처에 있는
해녀의 집을 찾아가 전복죽에 해장을 했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었고 누구 하나 거부하지 않고
아침에 잡아온 전복회를 시켜 간단히 하얀거 한잔씩 걸쳤다
그리고 또 걸었다. 
2박3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10년전 이맘때 제주여행

한가지 확실한 건, 10년 후 그 날이
이렇게 아련하게 기억될지 그땐 몰랐다는 거다
그리고 추정컨데 10년 후에 모습도
그때의 예상과는 아마도 많이 다르지 싶다
그렇다고 이게 어떤 후회나 아쉬움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긴하다)
그냥 우리 모두가 본능처럼 알고 있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순간을 살아갈 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시간이라는, 인생이라는 것의 무게에 대한
잠깐의 넋두리일 뿐이다

그렇게 걷고 마시고 수다 떨고
그러다 기분 내킬때 셔터를 몇번 눌러둔 덕분에
여기 한장의 jpg가 남았고
그걸로 오랜만에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그때의 선후배와 5월의 햇살처럼 따스한 대화를 나눴다

그렇다. 어쩌면 인생이란,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순간을 살아가는 인생이란,
기분이 내킬때를 그냥 넘기지 않고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닐까
눈으로 담아도 분명 좋았을 그 날의 청보리밭을
나는 그 순간의 기분이 시키는 대로
굳이 카메라를 꺼냈고 그럭저럭 구도를 잡았고
나름 정성들여 몇번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담아서 남긴 이미지보다
훨씬 선명한 기억 한조각을 온전히 남겼다

10년전 가파도의 청보리밭처럼
이렇게 작든 크든 나름의 최선들은
나의 삶에 흔적들을 남길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그리고 한가지 더 바라건데
그 흔적들이 쌓여서 나중엔 앉아 쉴수 있는 의자도 되고 
그늘도 되고 안주거리도 되어주기를

봄만되면 길어야 한달 남짓될까 싶은
계절에 의미를 부여하고 노래까지 불러대는 것이
영 시덥지 않고 못 마땅했다. (샘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 노래 앞에서 늘 뜨끔했다.
봄날은,
간다

그래서 조심스레 바래본다
올해 첫눈이 오기전에 다시 한번 짧은 여행을 떠나자는
오늘의 약속 만큼은 그냥 가버리지 않기를...
기분 내킬 때 셔터를 몇번 눌러보는 기쁨
부디.

20220509
남사친


롤러코스터 남사친

문득 어린이날이 생각이나서 뜬금없이 7살 딸아이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뭘갖고 싶냐고 물었다
조금의 망설임 없는 답변이 나왔다. 레고 롤러코스터. 
마치 이 순간을 준비했다는 듯. 나도 지체없이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레고 정도의 물건으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지금 이 시절이 얼마나 좋은가
나중에 아이가 커서도 호기롭게 갖고 싶은 그것을 선물 할 수 있는 아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출근하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침에 딸아이에게 들었던 롤러코스터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인생은 오르락 내리락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롤러코스터 같다는 흔한 말.
흔한 비유지만 결코 틀리지 않다. 

롤러코스터에 오르기 전에는 오만가지 상상과 걱정, 기대를 품고
기다리는 줄이 지겹기도 하고 고릿적 옛날 추억까지 꺼내가며 수다를 떨고
막상 탑승을 하고 안전바가 내려오면 그 기다리는 과정은 순식간에 지워져 버린다

그리고 일단 기차가 출발하고 나면
상상, 기대, 걱정 같은 감상적인 단어는 끼어들 틈이 없다
가슴 철렁하고 안도하고 다시 내려앉고
밖으로 내동댕이 쳐질듯 휘돌아가는 힘을
그저 견디고 놀라고 소리지르며 분출할 뿐이다

그리고 어느새 마지막 코너를 돌아 출발한 곳에 기차가 멈춰서면
그때서야 안도하고 옆을 보며 함께 출발했던 이들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나서 드는 생각.
왜 이리도 짧은가. 기다린 시간이 얼만데. 

이런 생각들이 결코 가볍지 않게 들리는 것은
내가 지금 롤러코스터를 기다리는 입장도 아니고, 
안전바를 내리고 마지막 기대감의 심호흡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점과 저점을 찍으며 정신없이 폭주하는 중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이 기차가 오래오래 폭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너무 일찍, 그리고 갑자기 마지막 모퉁이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사람의 욕심도 사심도 늘 위를 향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을 온전히 견뎌내는 내력이다
어느 유명한 드라마에서 인생의 내력이란 말을 듣고
그 담담한 촌철살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내력이 필요한거다.

다시 롤러코스터로 돌아간다.
그렇게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사람의 선택지는 몇가지가 있다.
이번엔 뭘 타볼까 하고 다른 놀이기구를 향해 가거나
우리 한번 더 탈까 하고 다시 대기줄 맨 끝을 향해 가거나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후자였던 적이 훨씬 많았던거 같다.
늘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고. 이번엔 더 잘해보고 싶었다.
분명 다시 타는 롤러코스터는 처음보단 더 견딜만 할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건 처음보단 덜 짜릿할 것이다
내력일지 내성일지 불분명하지만 아무튼 그것이 생긴것이다

인생이 롤러코스터 같다는 뻔한 말에서
롤러코스터의 중반 이후를, 그 다음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느새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바닥 17년차의 나름 자연스러운 수순일까.

이제 롤러코스터가 나에게 주는 것이
짜릿한 스릴인지, 공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놀이 동산에 입장을 했고
온전히 나의 의지로 롤러코스터를 골랐고 
조금은 지겨웠지만 나름대로 소담스러웠던 대기시간을 지나
미친듯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있다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은 지났고 후회는 이미 늦었다
오직 내력의 시간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분명 멈춰선 롤러코스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대기줄 맨 끝을 향해 달려갈거라는 것을.

5년 2개월만에 여기 다시 글을 올린다.
이렇게 나는 그동안, 오늘도, 출근을 했다.

20220406
남사친.



BOLD MOVE. 대화들


자신 혹은 누군가의
현재 행보에 대해, 아니면 과거의 행적에 대해
'담대하게' 어찌어찌 하겠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게 되는거 같아.
연초니까 더더욱 여기 저기서
담대하게 나아가자는 얘기들이 들려는거 같고 말야

개인적으로는 살짝 종교적인 인상이 느껴지는 단어이기도 하고
너무 엄숙한 느낌이기도 해서 잘 쓰지 않는 말이긴 한데
그 의미에 있어서는 참 공감하게 되는게 사실이지

사실 담대하게 뭔가를 한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
겁없이 배짱 두둑하게 내 갈 길을 가련다
이렇게 호기롭게 외치더라도
뒤돌아서 전전긍긍하게 되는게 나같은 사람들 얘기

뭔가에 담대하기 위해선
일희일비하지 않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근데 그게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말이야...
게다가 가다가 두갈래, 세갈래 길을 만나면 또 어쩔거냐는 얘기지
가던길 가고 싶어도 어디로 갈거냐구...
담대라는 뜻에는 '자신의 선택을 믿고'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겠지만
바람이 불기도 전에 흔들리는게 나의 마음이라
참으로 담대하기란 힘이 들구나

연초부터 고민거리만 한 상이고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사실 좀 겁이 난다
뭐 다 내가 시작한 일들이고 원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막상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니 망설여지기도 하고...
결국 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뭐라도 하고 있겠지...


종무식 겸 시무식 남사친


각종 미디어나 단체에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그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나 인물등을 선정하곤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점잖은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발제를 클로징 멘트로 던지는 느낌이랄까.
 
딱히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간신히 개점휴업만 면했던
이 블로그의 일년 살림살이를 마무리 하는 방법으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끝에 나도 뭔가를 하나 꼽아보면서
일년을 마무리 짓고 또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비록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이미 새해가 밝고 날까지 저문 순간이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겠습니다’

올해 가장 수고한 매체인 JTBC뉴스의 슬로건과 같은 멘트다.
평범한 팩트가 전해지고 나면 어김없이 이 말이 던져진다.
‘뉴스룸은 한 걸음 더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한 방’이 나온다.  
직관적인 임팩트가 있는 뉴스 구성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뉴스,
어느 채널을 보나 비슷비슷했을 뉴스를
그들은 말 그대로 뉴스답게 만들었다.
게다가 한줄의 멘트로 대반전의 카타르시스까지 주었으니
화룡점정을 찍는 고수의 감각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뉴스룸 칭찬하자고 쓰는 글이 아니었건만…)

통찰의 열매는
언제나 팩트 너머에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한 걸음 더 들어가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
화룡점정 찍어주는 고수인 선배가 있든 없든
노력과 끈기, 근성 같은 것으로 이뤄낸
통찰의 열매.
갖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것 말이다.
뒷짐지고 두는 훈수는 쉽지만
플레이어는 늘 힘들고 외롭다. 
뭔가에 한 발짝 더 들어가는 것은,
그 한 걸음은 그렇게 늘 어렵고 무겁다.

어쨌거나
2017년에도 걸어가야 한다
훈수나 두고 있지 않기를.
남 탓하지도 않기를.
끝까지 걸어가 한 걸음 더 들어가기를.

새해 복 많이 받자, 여사친.


2017. 1. 1.
남사친.


여행에 대하여. 남사친



출국 신고서
이젠 없어진 출국신고서.
한글이름, 한문이름, 주민번호, 죽어도 안 외워지는 여권번호 등등...
거침 없이 써내려가다가
작은 칸에서 볼펜 끝이 잠시 머물렀다.
여행 목적.
득템을 위해 연말 홍콩으로 떠나는 무박3일 금까기 쇼퍼도
여행 목적을 쇼핑이라고는 쓰지 않는다.
어느 누가 그 작은 공란에 탐험, 휴식, 유흥 같은
자신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쓰겠는가 말이다.
우문 현답이라고 한다면 싱거운 자화자찬이겠지만
잠시 머물렀던 나의 볼펜 끝이 다시 움직였고
또박또박 두 글자를 적어 넣었다. 여행.
여행의 목적은 '여행'이다.


남의 휴가 사진
신혼여행 떠나던 날 로마행 비행기 안에는
유독 신혼부부로 보이는 커플들이 많이 보였고
실제로 몇몇 사람들을 다른 공항에서 마주치곤 했었다.
같은 날 같은 곳으로 떠나 같은 코스를 다녔다면
우린 그들과 같은 여행을 한 걸까. 당연히 아니다.
여행의 목적은 같아도 여행의 방법은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니까.
서점에 여행 서적들이 그렇게 넘쳐나는 이유도 그 때문일거다. 
하지만 난 그 감성 충만한 여행 서적들이
전혀 안 궁금한 남의 휴가 사진을 보는 것만 같다.
싫은게 아니라 미안하지만 정말 안 궁금한거다.


이방인 되기
남들이 궁금해 할 리 없는 나의 얘기를 하나 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기쁨이자 최고의 여행방법은 '이방인 되기'다
일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가 되는 기분,
낯선 공간에 이방인이 되는 기분 말이다.
해외건 국내건 여행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가는 여행지보다는
과거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던 여행지를
어느정도 시간을 두고 다시 방문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적당한 익숙함이 '이방인 된 기분'을
조금 더 편안히 배가 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때 동행자 없이 혼자라면 그야말로 베스트.
두 번째 가는데 무슨 이방인이냐고 묻고 싶다면 걱정 마시라 하고 싶다.
그곳에서 서너달, 아니 그 이상을
호텔이든 에어비엔비든 머무른다 해도
돌아갈 현실이 있는 한
장담컨데 당신은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니까.


나 거기 가봤어
하루 세끼가 아쉬운게 여행이지만
맛집의 감동도 시간이 지나면 어렴풋해지기 마련이다.
쇼핑의 기쁨도 점점 시들해질 뿐이고.
이방인된 기분이라는 건 아쉽게도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
하지만 여행은 이렇게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도
마지막 큰 즐거움 하나는 꼭 남겨 둔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나, 무심코 돌린 TV채널에서 
한 때 즐겁게 다녔던 그곳이 나오면
어디선가 그 때의 여운이 되살아나는 그 순간 말이다.
'나 거기 가봤어' 이 한마디에
추억은 언제든 소환될 수 있다는 것.
꽤나 매력적인 뒤끝이다.


훌쩍...다시
언젠가 인사동 근처에 세워져 있었던
어느 관광버스 옆구리에 궁서체 카피 한 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생각할수록 재밌는 말이다.
이 말엔 왠지모르게 '훌쩍 떠나고 싶은 현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여행 후엔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 할 현실' 이기도 하다.
뽕짝이 울려 퍼지는 관광버스를 타고 메이드인차이나로 가득한
한국전통문화의 거리를 거닐며 국적불명의 꿀타래를 먹으면 어떠랴
돌아가야할 현실이 있기에 여행은 이토록 달콤한 것을.  
그런데 만약 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나의 삶이라면
난 그 현실을 떠나고 싶어 또 다른 여행을 꿈꿀까.
그야 물론 당연하다.

우린 늘 여행을 꿈꾼다.


20160721
남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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